“어휴, 사장님 열심히 사네. 주식하면 이렇게 돈을 잘 버는데, 주식이나 하지.”
코로나가 온 나라를 덮은 해, 거래처 고깃집을 나와 차에 앉자마자 호가창을 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꼬는 마음은 없었다. 텅 빈 가게에서 혼자 애쓰는 사장님이 진심으로 딱했다.
골목 끝의 줄
골목 가장 끝에 있는 돼지고기 전문점이었다. 끝에 있는데도 가게 앞에는 늘 줄이 서 있었다. 한겨울에도 손님들은 입김을 불며 가게 옆 웨이팅 공간에 모여 차례를 기다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온장고를 하나 놓아 드렸다. 따뜻한 캔커피 하나라도 손에 쥐고 기다리면 덜 춥지 않을까 싶었다. 그해 겨울 손님들은 조금은 더 따뜻하게 줄을 섰다.
코로나가 오자 거짓말처럼 사람이 사라졌다. 가장 먼저 비어 버린 곳이 그 웨이팅 공간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이제는 사람들을 그 골목 끝까지 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줄은 없어졌고, 가게 안에도 손님이 듬성듬성 앉아 있을 뿐이었다.
가게에는 1층과 2층에 각각 준비 공간이 있었다. 손님이 몰릴 때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꺼내야 해서 층마다 따로 둔 곳이었다. 코로나 이후 2층 준비 공간은 사장님의 침실이 되었다. 그 많던 아르바이트생들도 하나둘 떠났고, 사장님은 혼자 1층 주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만들고, 맛보고, 버리고, 또 만들었다. 갈 때마다 모습이 조금씩 더 초췌해져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벌고 있었다. 폭락 뒤 시장이 되돌아오는 동안, 단타로 찍히는 빨간 숫자가 하루하루를 채웠다. 골목의 가게마다 한숨이 새어 나오는데,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서만 날이 좋았다. 그래서 그 주방을 보고 나와 차에 앉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간판 다섯 개
얼마 뒤 사장님은 가게 하나에 간판을 다섯 개 달았다. 길가가 아니라 배달 앱 위에. 한 주방에서 서로 다른 배달 메뉴 다섯 가지를 냈고, 그중 셋이 동네 순위 꼭대기를 휩쓸었다. 비결은 혼자 주방에서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하던 그 양념이었다. 좁은 주방에서 누가 만들어도 빠르게, 늘 같은 맛을 내는 만능 양념장 하나.
그해만 떼어 놓고 보면 우리는 둘 다 이긴 사람이었다. 사장님 주방에서 주문 알림이 울리는 동안 내 계좌도 웃고 있었다. 같은 폭락장을 지나며, 서로 다른 곳에서 돈을 벌었다.
담배 한 대
2년쯤 지나 그 가게에 들렀을 때, 주방에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가게가 예전처럼 붐비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을 들였을까 싶었다. 사장님은 자기가 하던 배달 음식을 이어서 할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담배나 한 대 같이 피우자며 나를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사장님은 이제 음식은 그만하고 소스를 만들 거라고 했다. 공장을 하나 인수해서, 이미 잡아 둔 납품처에 댈 거라고. 그러고는 나중에 회사 생활하다 문제 생기면 전화하라고 했다. 그게 그냥 던지는 마지막 인사라는 건 나도 알았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지 않았고, 그 뒤로는 볼일이 없었다.
1년쯤 뒤, 사장님이 넘기고 간 그 배달 매장이 문을 닫았다. 사장님에게는 납품처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잘 계시려나, 잠깐 걱정이 들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에서 우연히 사장님을 봤다. 고급 외제차를 몰고 지나가고 있었다. 어휴, 뭐야. 잘 계시네. 그러고 말았다.
그 배달 매장이 문을 닫을 무렵, 나는 깡통을 찼다.
가격표와 식탁
돌아보면 그해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가격을 봤고, 사장님은 식탁을 봤다. 웨이팅 공간에 줄을 서던 사람들이 집에서 앱을 열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배달 가게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좁은 주방에서 여러 메뉴를 빠르게 내야 하는 그 가게들에 무엇이 필요할지, 사장님은 빈 가게의 주방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사장님이 내려놓은 건 하나였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맞히는 일. 그건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의 상황과 바깥의 상황을 봤다. 안에는 손님이 끊긴 가게와 혼자 남은 주방이 있었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밥 먹는 방식이 바뀌고 있었다. 끝을 맞히는 건 불가능했지만, 시작을 알아보는 건 빈 가게에 앉아서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끝을 기다리던 그 한가운데가, 사장님에게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붙잡은 뒤, 사장님은 하루를 더하지 않고 곱하는 쪽으로 갔다. 경기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는 가게 하나에서, 여러 가게에 소스를 대는 쪽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갔다.
그해 나도 하루에 수십 번씩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버리는지가 아니라, 화면 속 숫자가 오르는지 내리는지뿐이었다. 그 숫자가 무엇의 결과인지 묻지 않았으니, 숫자가 방향을 바꿔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뜻을 모른 채 가격표만 보고 달렸고, 그러니 내 때는 늘 남이 정했다.
골목 전체를 본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며,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 주역
그날 차 안의 나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그때 보이는 만큼 보고 있었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요즘 나는 골목을 돌 때 가게 하나보다 골목 전체를 보려 한다. 어느 골목에 사람이 모이고 어느 골목이 비어 가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돈을 쓰기 시작했고 무엇에서 손을 떼는지. 가게 하나의 매출은 그 흐름이 드리운 그림자일 뿐이었다. 골목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 삶 앞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도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가끔, 빈 가게 주방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장님을 만나면 조금 오래 서 있다 나온다. 딱해서가 아니다. 그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이제는 궁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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