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첫 자리 숫자

숫자에도 손자국이 남는다. 나는 그걸 정기 감사를 앞두고 사무실에서 엑셀로 내 장부를 펼쳐 놓았을 때 처음 봤다.

기억나지 않는 300곳

내 장부에서 이상한 곳을 먼저 찾아내야 했다. 맡은 거래처만 300곳쯤 됐다. 장사가 잘되면 더 잘되라고, 안되면 버티라고, 이벤트가 있으면 이벤트라서 지원이 나갔다. 그때마다 이유는 분명했다.

문제는 그게 300곳의 3년치 장부라는 거였다. 한 달에도 수십 곳에 지원이 나갔으니, 엑셀 시트를 아무리 내려 봐도 어느 가게에 언제 지원이 나갔는지 다 기억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 지원이 나간 달에는 장부의 흐름이 깨진다.

감사는 장부에서 아무 날짜나 짚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좋은 뜻으로 보낸 지원이라도, 기억하지 못하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튀는 숫자를 쉽게 찾는 방법을 찾아 유튜브를 뒤지다가, 처음 듣는 법칙 하나를 만났다.

1로 시작하는 숫자

저절로 쌓인 숫자들을 모아 맨 앞자리만 세어 보면, 1로 시작하는 숫자가 30%나 된다. 9로 시작하는 숫자는 5%도 안 된다. 강 유역의 넓이든 도시 인구든 회사 매출이든 똑같다. 1부터 9까지 골고루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게 벤포드 법칙이다.

이 법칙은 복리로 불어나는 숫자에서 특히 잘 맞는다. 100만 원이 200만 원이 되려면 두 배로 불어나야 하지만, 900만 원이 1,000만 원이 되는 데는 조금만 더 붙으면 된다. 그래서 앞자리가 1인 채로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길다. 돈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오가며 쌓인 장부는 이 법칙을 따르는데, 사람이 정해서 넣은 숫자가 섞이면 어긋난다. 감사가 이 법칙을 쓰는 이유다.

장부의 숫자를 엑셀에 모아 첫 자리만 뽑아 세어 봤다. 어느 거래처의 어느 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짚고 싶었는데, 그건 잘 나오지 않았다. 한 달치 숫자는 너무 적었고, 이 법칙은 숫자가 많이 모여야 비로소 모양을 보여 줬다. 대신 거래처 단위로 묶자 지원이 많이 들어간 곳이 걸러졌다. 법칙에서 어긋난 장부들이 위로 올라왔고, 감사가 어느 장부를 불러낼지도 미리 보였다.

가장 잘 팔리는 집

맨 위로 올라온 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점이었다. 당연했다.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니 지원도 가장 많이 나갔다. 그 거래처의 판매와 지원을 나란히 놓아 보다가 손이 멈췄다.

지원을 많이 한 만큼 판매는 많이 일어났다. 지원을 빼고 내게 남은 이익을 따져 보니, 판매 2위에서 5위까지의 거래처보다 낮았다.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가장 적게 남기는 곳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몰랐다.

지역의 랜드마크니까 거래한다는 것만으로 홍보가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붙인 이유였다. 많이 팔리면 많이 남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더 팔고 싶었던 내 욕심이 비틀어 놓고 있었다.

감사에서 내 장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없는 장부와 손대지 않은 장부가 과연 같은 말일까. 그 음식점의 숫자는 규정 안에 있었지만 법칙에서는 어긋나 있었다. 문제가 없다는 건, 누가 손을 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돈은 저절로 오가게 두면 이 법칙을 따르고, 사람이 손을 대면 어긋난다. 내 장부에서는 그 손이 내 것이었다.

시장에서 오가는 돈에는 훨씬 큰 손들이 얽혀 있다. 개입도 통제도 내 장부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로. 나 같은 사람은 대개 그 손을 대는 쪽에 서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장 앞의 나는 숫자를 흔드는 쪽이 아니라 흔들리는 쪽이었을까.

내 손자국

그러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숫자가 사람 손을 알아본다면, 시장에서 누가 손을 댔는지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알면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벤포드로 주식을 하는 방법을 한참 찾아봤다. 그런 방법은 없었다.

대신 이상한 게 하나 나왔다. 몇 년 동안 적어 온 내 매매일지의 숫자를 모아 첫 자리를 세어 봤는데, 하나도 맞지 않았다. 장부도, 도시 인구도, 강 유역의 넓이도 따르는 그 모양을 내 일지만 따르지 않았다.

어긋난 매매일지를 오래 들여다보다가 보였다. 시장의 큰 손들이 남긴 자국을 찾고 싶었는데, 내 일지에는 내 손자국밖에 없었다. 얼마를 넣을지도, 언제 뺄지도, 거기 적힌 숫자는 하나하나 전부 내가 정한 것이었다.

장부에서는 어긋난 곳만 찾으면 됐다. 그곳만 알면 나머지는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나 있는 매매일지는, 어디서부터가 시장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인지 가를 수가 없었다.

매매일지를 닫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몇 년 동안 나는 그 일지로 수익률을 계산하고 다음 매매를 정했다. 키보드 위에 올려 둔 두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떼야 할 곳과 손을 써야 할 곳이 따로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 둘을 거꾸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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